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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유명 연예인을 안다. 유명하니까. 그래서 나도 테일러 스위프트를 알았다. 유명하니까. 게다가 테일러 스위프트가 좀 유명한가? 해외 연예계에 별 관심 없는 나조차도 이런 저런 가십들을 알고 있을 정도니 보통 유명한 정도는 아니다.

트위터에서 누군가 <미스 아메리카나>를 추천하면서 얘기했다: 성추행 사건을 겪고 각성한 테일러 스위프트를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꼭 보라고.

성추행 사건을 겪었다는 것을 트위터 추천사(?)를 통해 처음 알았기 때문에 조금 놀랐지만, 각성했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조금 기대가 되었다. 그래서 넷플릭스 한 달 무료 체험을 시작하자마자 검색해서 '내가 찜한 콘텐츠'에 등록했다. 그 당시에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다른 컨텐츠들을 몇 개 보다보니 막상 선뜻 재생 버튼에 손이 가지 않았다. 너무 잘 아는 연예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누가 이걸 시청하라는 숙제를 내준 것도 아닌데 찜해둔 상태로 며칠을 묵히면서 마음 한 구석에 부채감 같은 것이 생겼다. 각성했다는 얘기 때문에 볼 결심을 했던 것이라서 그런지 그 얘기를 외면하면 안 된다는 도의적인 책임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아무도 신경 안 쓸테지만 혼자서 그렇게 신경을 쓰다가 결국 오늘 아침,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별 생각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다큐멘터리가 끝날 때 쯤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많이 미안해졌고, 이 사람을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아리아에게 테일러 스위프트 노래를 틀어달라고 해서 듣고 있다. 별 사이가 아니니까 응원도 별 것이 아니라도 괜찮을 것이다.

 

어쨌든 딱히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이 아니더라도 재미있고 의미있게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기대와 달리 재미가 있었다.

  • 내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 때문에 마음이 좀 안 좋았다. 1년 넘게 같이 일한 옆 자리 동료도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데 내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어떻게 잘 알까. 한 시간 짜리 다큐멘터리를 보고도 그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긴 매한가지지만, 그 전에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좀 미안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사과를 할 건 아니지만 그냥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었다.
  • 이런 저런 가십들을 기반으로 테일러 스위프트가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은 진짜로 미안했다. 유명한 노래들은 잘 듣고 있었지만 은연중에 별로 호감형 연예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큰 오해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유명인이 겪는 삶의 어려움이 어떤 것일지가 조금 상상이 되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유명해진 사람의 고충은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잘 컸구나 했다.
  • 보는 내내 저 사람 진짜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트위터 추천사에서 '각성'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좀 오바라고 생각했는데 엄청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원래 똑똑한 사람이 스스로에게 물렸던 재갈을 풀게된 이야기였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 최대치가 저 정도가 아닐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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