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종이의 집> 시즌 3을 보는 대신 <지정 생존자>를 보기로 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왜 이렇게 인기가 있고 리메이크까지 됐는지 알 만 하다. 시즌 1 마지막 에피소드를 방금 끝냈다. 인간의 신념에 대한 헌신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시리즈다. 세계에서 가장 일 잘하는 사람들이 등장인물이라 답답하지도 않다. 심지어 숨막히는 첩보전도 쉬지 않고 나온다. 훌륭한 주제 하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쉼 없이 펼쳐진다. <굿 플레이스> 처럼 사랑하게 될만한 시리즈는 아니지만 아주 재미있는 시리즈임은 분명하다.

 

시즌 3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다 봤다.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그렇듯 마지막 시즌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 시즌 1은 시즌 전체가 하나의 큰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으로써 그려졌다. 속도감도 있고 에피소드간 연계가 잘 이루어졌다.
  • 시즌 2는 다수의 사건들이 닥치면서 각각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다. 개별 에피소드가 산발적으로 느껴지고 그다지 흥미진진하지 않다. 그래도 시즌 3보다는 낫다.
  • 시즌 3은 어떤 면에서 작정을 하고 만든 시리즈인듯 하다. 제작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인권 문제를 하나씩 다뤄보는게 목표가 아니었을까 싶다.

시즌 1, 2에서 그려지는 미국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최악의 국가 재난 사태에서도 멋진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국가 기능을 회복한다. 대통령이 보여주는 리더십은 거의 판타지에 가깝다. 도덕적으로 타협하지도 않고, 부하직원들의 모든 의견을 경청하며, 자신을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조차 존중한다. 이런 사람이 실재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정도다. Saint나 부처가 이런 레벨이 아닐까 싶다.

시즌 3에서는 신에 가까웠던 대통령이 현실의 정치인이 된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기획된 실망은 이 부분이 아니었을까 한다.

 

시즌 1, 2에서는 정치에 관한 드라마인 만큼 시즌 전체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에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진다. 어떤 직종이든 유색인종과 여성이 등장한다. 딱히 신경쓴게 아니라 내가 국내 컨텐츠에서 이 정도의 전문직 여성을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느꼈을 수는 있다. 아직 국내 드라마에서는 전문직 여성이 등장하더라도 일을 하는게 아니라 연애를 하니까. 시즌 1, 2에 걸쳐서는 확실히 미국 드라마라 그런지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즌 3에서는 확실히 미국의 한계를 볼 수 있었다. <미스 아메리카나>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여성 인권 문제에 있어 미국의 한계는 명확하다. 트랜스젠더와 꾸밈노동. 시즌 3 내내 미국 사회의 가장 소외된 사람들로 그려지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 트랜스젠더 - 백인 남성이 여자화장실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신고하는 여성을 악역으로 만든다. 
  • 에이즈 보균자인 흑인 동성애자 남성 - 에이즈 보균 사실을 파트너에게 말하지 않고 성관계를 가져놓고 결국은 파트너가 너를 믿지 못해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게 만든다.
  • 여성 조혼 - 대통령이 여성 조혼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자 사우디의 공주가 찾아와 일부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여성 조혼보다 미국이 가진 다른 이슈들이 더 문제라는 설명을 하게 만든다.

최악이다. 여성의 안전과 권익에 관련된 이슈들을 대단치 않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써 여성을 사용한다는 것까지 아주 악질적이다.

당연하게도 동양인 여성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시즌 내내 인권 문제만 얘기하려고 작정을 했는데도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시즌 1, 2에서 예의상 몇 명이 등장했던 것보다 나쁘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동양계 여성 인물이 사망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대 총선 사전투표 후기  (0) 2020.04.10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한줄평  (0) 2020.03.14
넷플릭스 <종이의 집> 보는 중  (0) 2020.03.07
새벽에 퇴근하는 꿈  (0) 2020.03.01
영화 <컨테이젼>  (0) 2020.02.26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